《나의 프루스트》, 한 사람의 세계를 읽는 일
유예진 불문학자
2026년 2월 26일
국내 출판된 마르셀 프루스트 책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예진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그는 프루스트 연구자로, 프루스트 관련 저서 3권을 번역하고 프루스트에 관한 책 5권을 펴냈다.
계속 마주치는 이름을 보며 궁금했다. 프루스트를 공부하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얼마 전, 그의 신작이 출간됐다. 역시나 프루스트에 관한 책이었다. 《나의 프루스트》를 출간한 유예진 불문학자를 만났다.
신작 《나의 프루스트》는 어떤 책인가요?
- 극작가, 피아니스트, 번역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글을 모은 책이에요. 각자 프루스트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담았어요.
그동안 출간된 프루스트 관련 책을 보면, 프루스트를 공부한 연구서가 많아요. 작품 분석, 학술적인 비평 등 프루스트를 읽는 방법론적인 책이 많죠. 최근 프랑스에서 전공자가 아니라, 애독자들이 프루스트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이 나왔어요. 100년 전에 사망한 작가가 현대인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울림을 주는 게 신기했죠.
우리나라에서도 정복해야 할 어려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친근한 동반자로서의 프루스트를 인식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꼈기에 이번 책 《나의 프루스트》를 기획하게 됐어요.
교수님 글의 제목은 〈아웃사이더 프루스트, 비주류 소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프루스트는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프루스트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작가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프루스트는 소심했고 어떻게 보면 찌질이 같은 면도 있어요. 상대방의 환심을 사고자 아첨도 많이 했고요. 영웅 같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하물며 나의 일부분을 겹쳐 볼 수 있는 그런 작가죠.
소설이 출간됐을 초기, 프루스트는 이해 받지 못하고 악평을 받는데요. 그럼에도 자신을 믿었고 계속 써나갔어요. 그게 프루스트의 힘이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했어요. 소심한 듯 약한 듯하지만 그 안의 단단함이 보이는 모순성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프루스트와의 첫만남이 궁금해요.
-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고 프루스트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전까지 제가 아는 프루스트는 그야말로 문학계의 대가였어요. 그의 책은 위대한 책 중 위대한 책으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 같았죠.
개인적인 취향이랄까요. 언제나 저는 남들이 다 대단하다는 사람보다는 왠지 무언가 안쓰럽고 모자란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는 했는데, 영화에서 묘사되는 프루스트가 딱 그랬어요.
주인공 프랭크 긴즈버그는 문학과 교수이자 프루스트 전문가로 나오죠. 그런데 자신이 전공하는 작가 프루스트를 루저이자 아웃사이더, 완전한 사회적 낙오자로 소개해요. 영화 속 묘사를 보고 나니 ‘프루스트가 그런 사람이었어?’하며 관심을 갖게 됐죠.
프루스트를 읽은 지 얼마나 되셨어요?
- 2008년 무렵 읽기 시작했으니 10년 조금 넘었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프루스트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을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 보는 게, 한편으로는 질리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 고전은 시간을 타지 않거나, 시간이 흘러도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00년이 지났는데도 프루스트가 계속 읽히는 이유는 여전히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프루스트를 읽었던 10년 전, 지금의 제가 다르기 때문에 질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다른가요?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린 소년이 중장년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고 있어요. 내가 인생 경험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집중하게 되는 소설적 요소가 다른 것 같아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시간은 이 책의 중요한 테마예요. 그런데 그게 10년 전에는 와닿지 않았어요. 주인공 마르셀이 누구를 만나 어떠한 우정을 맺고, 어떤 사랑을 하고, 또 어떠한 환상에서 벗어나는지, 초기의 과정에 관심이 갔다면요.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은 프루스트가 묘사하는 시간의 흐름, 나이듦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아픔이 더 크게 와닿고요. 책 내용은 그대로인데 보이는 부분이 달라졌어요.
시간이 흐르는 한, 평생 읽을 수 있는 책 같아요. 그래서인지 프루스트 효과에 대한 교수님의 해설에서 유독 눈에 가는 구절이 있었어요.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자극받은 특정 감각에 의해 기억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과거의 부활, 그리고 그로 인해 지고의 행복을 느끼게 되는 비의지적 기억의 작용” 중에서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이요.
- 마들렌을 먹기 직전의 상황을 보면, 중년의 마르셀이 우중충한 날씨에 거리를 걷다가 자괴감에 빠져 집에 돌아와요. ‘내가 헛살았구나, 나는 재능도 없고,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꿈도 이루지 못했구나.’ 그런 저조한 기분으로 마들렌을 한 입 먹죠. 그때, 순간적인 감각의 자극으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희열을 느껴요. ‘아, 삶은 살 만한 거야.’하며 말이죠. 사실 이 장면만 보면, 고작 마들렌을 먹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런 행복을 느끼는지 설명이 안 돼요.
프루스트는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과거를 창백한 과거라고 표현해요. 반대로 향, 맛 등 감각에 의해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비자발적으로 풀려나는 기억이 진정한 과거라고 하죠. 그리고 이 과정에는 우연이 작용하기도 해요. 누구나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우울함,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에 반전이 벌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 〈되찾은 시간〉이 그렇게 유명한 것이군요.
- 그 전까지는 계속해서 실패, 환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마지막 권에서는 지나온 시간들, 나의 모든 경험이 헛되지 않고, 지금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깨달음이 나와요. 그래서 낭비한 것 같았던 시간,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되찾아지고 의미를 갖게 되죠. 1권부터 쭉 이어온 그 과정이 마지막 권인 7권 <되찾은 시간>에서는 마구 터져 울려 퍼지는데 마치 불꽃놀이의 화려한 피날레 같지요.
지금 시대에도 프루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프루스트를 공부하고 소개하는 걸까요?
-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명감을 가지고 약을 처방하듯 프루스트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이기적인 이유예요. 제가 재미있고 즐거우니까요. 제가 좋아서 한 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저는 때로 모든 일에 이유가 필요한 것만 같거든요. 생각이 많아지는 답변이네요.
- 프루스트가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남의 반응을 생각하고 그것에 맞춰 하다 보면 실패할 수 있다고요.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 관심사를 따르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는 있다고 해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생각만큼 독특하거나 별나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일정한 보편성 속에 짜여져 있기 때문에 각자가 원하는 것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반드시 다른 이와 연결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수님이 또 그렇게 말씀하셨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지금 프루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힘 같다”고요.
- 내가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두려울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이 예술가인 것 같거든요. 지금 당장은 호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즐거운 무언가가 있다면 프루스트의 삶이나 소설을 등대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프루스트도 당시에는 인정 받지 못했잖아요. 프루스트를 떠올리면 또 힘을 얻게 되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 호기심이죠. 저는 소설을 읽을 때도 작품만 떼어내서 보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냥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왜 이런 취향을 갖게 됐고,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요.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프루스트의 질문으로 마무리해보려고 해요. 완벽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 행복의 기준은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또 한 사람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무엇일지 묻는다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구상하던 프로젝트에 실체를 부여하고 완성됐을 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 그게 제게 있어 행복의 순간인 것 같아요.
궁금했던 한 세계를 만났다. 길지 않은 대화에서 유예진 교수는 프루스트보다 앞서지 않으려 노력했다. 프루스트 이야기 사이 작게 열린 틈으로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시간을 살아내는 조용한 분투를 향한 집요하고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인터뷰·편집 | 정원진 에디터
타인의 구미에 맞추어 일할 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할 때 그 결과는 반드시 누군가의 공감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한 무엇이 아무에게도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독특하지 않고, 천만다행으로 삶에서 그토록 큰 기쁨을 주는 호감과 이해심으로 우리의 개인성은 보편성이라는 틀 속에 짜여 있다.
프루스트, 『모작과 잡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