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는 세계


녹색광선 박소정 대표


2026년 1월 6일

더현대 서울 리딩파티 팝업 북토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박소정 대표

2025년 어느 가을 밤,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 너무 좋은 대화였다.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다. 때로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저 ‘좋다’는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담아내기도 한다.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출판사 녹색광선 박소정 대표와의 대화였다. 더현대 서울 리딩파티 팝업 스토어에서 진행한 북토크에 함께 해달라는 조심스러운 제안, 그리고 흔쾌한 응답으로 성사된 자리였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을 손에 쥔 채, 박소정 대표는 작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아름다운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조금 더 귀담아 듣고자, 저마다 자기의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그의 세계가 궁금해, 다시 한번 대화를 청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도 역시 흔쾌히 응답했다.


미완성,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는 세계. 지난번 대화 후 떠오른 단어들의 조합을 갖고 12월의 어느 날 녹색광선 사무실을 찾았다. “책을 좋아하시나요?” 라는 당연한 질문을 할 수 없어, 첫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하셨어요?


- 완전 어릴 때부터요. 아기 때부터 간판을 다 읽고 활자 중독 증세를 보였다고 해요. (웃음) 책을 좋아했는데 유복한 친구 집에 있는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을 갖고 싶었어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아버지가 헌책방에서 책을 사다 주셨죠. 초판 다음으로 출간된 78년본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방안에서 넓은 세계를 만나셨네요.


- 어릴 때 접했던 세계가 지금의 취향을 지배하고 있어요. 세계여행도 늦게 간 편이에요. 책에 묘사된 곳을 생각하다가 30대 직장인이 되어서야 파리를 갔죠. 개선문에 가서 소설 《개선문》 속 칼바도스 이야기를 했어요. 이미 몇 번 와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소설 속 파리를 소개했죠.


소설 속으로 여행 가는 것 같아요.


- 편집자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 좋아요. 포르투갈도 참 좋았어요. 리스본 근교 도시 신트라와 호카곶, 대항해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죠. 짧은 영어로 택시 기사님과 대화도 나눴어요.


“포르투갈은 느리고 게으르다, 빠르게 변화하는 아시아에 대해 우리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속상함을 표하시더라고요.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늦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여행자의 입장이긴 하지만, 저는 느리다는 게 장점으로 다가왔어요.


물론 느림에서 오는 슬픔도 있죠. 변화하는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느낌, 거기서 오는 애수, 그게 포르투갈적인 색채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페르난두 페소아 작품에서 볼 수 있듯요.


어떻게 보면 레마르크, 페르난두 페소아와 같은 작가들이 가이드였네요. 고전문학은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같아요.


- 당대 말과 글, 특히 글에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 게 고전문학이죠. 그것들이 시간을 버티고 흘러서 저에게로 온 건데, 저는 그들처럼 글을 쓸 재능은 없지만, 그 글에 감응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던 것 같아요.

더현대 서울 리딩파티 팝업 북토크에서 관객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박소정 대표

10년 넘게 인사담당자로 일하면서, 자기계발서가 아닌 소설을 많이 추천하셨었다고요?


-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두려웠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세계가 어느 정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해보니, 그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었죠.


자기계발서도 추천하지만, 읽을 때는 동기부여가 되어도 오래 가지는 않더라고요. 목적 의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책을 읽었을 때 느낀 환희를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추천한 책은 실패가 없기도 했어요. (웃음) 주로 “너무 좋았다”는 평을 전해주셨죠. 저는 그게 진짜 같아요. 미사여구보다 “너무 좋았다”는 말이 모든 것을 함축한 감상평 같거든요.


“너무 좋은” 책, 저도 추천 받고 싶어요.


- 슈테판 츠바이크의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추천해요.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는 평전이죠. 발자크는 문제적 인간이었어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귀족 칭호를 붙이기도 하고, 평생 욕망을 추구했는데 성공한 게 단 하나죠. 단 하나 성공한 게 글쓰기였어요.

저희 책도 이렇게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는 ‘책머리에’로 제가 직접 글을 써서 소개하기도 해요.


오랜 시간 읽히는 고전 앞에 자신의 생각을 붙인다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에요. 글은 말과 달라서 남는 것이죠. 부담되지만 해야 할 일이죠. 알베르 카뮈의 《계엄령》를 출간할 때도 그랬어요. 하지만 《계엄령》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책이 아니라 하나의 우화 같은 희곡집이거든요.


그리고 제 영향력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작게, 느리게 하는 사람이에요. 저의 작은 영역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게 엄청난 리스크로 다가올 것 같지 않았어요. 어쩌면 작은 조직과 작은 목소리의 장점이죠.


작고 느리게…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 책 한 권을 공들여 만드시는 이유도 같을까요?


-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면,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죠. 하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건, 멈춤을 만들어요. 그리고 몰입하게 하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편집할 때, 역자가 쉼표를 다 살려뒀다고 하더라고요. 쉼표를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요.


소설은 사치재예요. 책에 빠져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저도 무조건 책 읽으라고 하지 않아요. 여유가 있을 때 읽는 것을 추천해요. 하지만 시간은 나를 위해서 잠깐이라도 멈춰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확보되는 것이에요. 


책은 사치재라는 표현은 처음이에요. 생각해보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아요.


- 문학에서 실용성을 찾으려 하는 것은 마치 맞지 않는 틀에 문학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느껴져요. 문학의 진정한 묘미는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강박 없이, 그저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향유’의 시간에 있으니까요.


김훈 작가가 조사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고심했듯, 문학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모국어의 섬세한 질감을 만끽하는 데 있어요. ‘어떻게 감정을 이토록 절묘하게 포착했을까’ 싶은 표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죠. 사실 독서 후에 거창한 비평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너무 좋았다”는 짧은 진심 하나면 그 작품을 온전히 읽어냈다는 증거로 충분하니까요.


좋은 것에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도 너무 좋은 말이네요. 일상 중 빠르게 지나는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잡아두는 대표님만의 방식이 있나요?


- 이번 여행을 앞두고 라이카 카메라를 장만했어요. 제가 사진 찍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지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비록 뛰어난 예술가처럼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 제가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만의 아카이브에 시간을 축적해가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는 세계를 끊임없이 궁금해할 것 같아요.


- 나이 들어서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해나갈 수 있는 일을 이제야 찾은 것 같아요. 먼 훗날 할머니가 되어서도 책을 만들고 있을 제 모습이 그려지거든요. 거창하진 않지만 느리고 천천히, 작은 세계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면서요.

 

그리고 작고 느리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어가는 저와 닮은 사람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지켜보면서요.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눈이 살짝 얼어 있었다. 행여 넘어질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뗐다. 작은 보폭에 맞춰 ‘작은 목소리, 작고 느리게 천천히…’ 하는 말들이 귀에 맴돌았다. 내일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미완성이라면, 그보다 멋진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의 대화 역시, 너무 좋았다.


인터뷰·편집 | 정원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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